3378

<2006년 5월 20일 체코에서>



체코 수도 프라하에서 남동쪽으로 자동차로 2시간 떨어진 곳에 제 2의 도시 브르노가 있다. 이곳 할리데이인 호텔에는 매일 저녁 백 여명이 넘는 한국 관광객이 쏟아져 들어온다. 이들은 이튿날 아침 일찍 일어나 싸들고 내려온 짐을 부랴부랴 대형 관광버스에 싣고 어디론가 떠난다.

이 한국 관광객은 대개 중년을 넘긴 남녀 관광객들로 대한항공 직항 편으로 인천을 출발, 프라하 공항에 저녁때 도착하여 프라하에서 투숙하지 않고 공항에서 곧 바로 달려와 이 호텔에 땅거미 질 때쯤 도착한다. 호텔 로비에서 한바탕 소란을 떤 다음 각기 배정받은 방으로 들어가 자는둥 마는둥 아침 일찍 일어나 호텔 로비에 있는 식당으로 향한다. 호텔 식당은 아침 6시 반에 문을 여는데 한국 관광객들은 문을 열기 무섭게 식당안으로 들어가 차려 놓은 음식 이것저것을 접시에 담아다가 부지런히 입안으로 옮긴다. 끼리끼리 짝을 지어 테이블에 둘러 앉아 먹는 동안에도 무엇인가 쉴새 없이 지껄인다. 차려놓은 음식과 테이블 사이를 몇 번이나 오간다. 혹 이들 사이에 외국인 관광객이 끼게 되면 이 외국인은 매우 난처한 표정으로 애써 인내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식사를 끝낸 한국 관광객들은 여행 가이드의 지시에 따라 호텔 앞에 대기한 관광 버스에 몸을 싣고 가이드의 확인을 마치기 무섭게 예정된 목적지로 떠난다.

나는 이 호텔에 2일 전에 도착하여 금년 51회를 맞는 국제회의에 한국 유일의 정회원 자격으로 참석하였다. 어제 저녁은 금년도 이 회의를 주관한 이곳 브르노 국제 전시장 사장의 초청으로 전통있는 큰 성의 홀에서 성대한 만찬이 있었다. 체코 전시 및 산업 활동의 중심지 브르노에 대규모 국제 전시장을 운영하고 있는 이지 스클라 사장과 이 지역 기업 대표들이 나에게 최근 발생한 현대자동차 회장 사건이 어떻게 될 것인가 물었다. 이들은 한결같이 이 사건이 하루 빨리 잘 해결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 이유인즉 체코 모라비아 지역의 노쏘 비체에 현대자동차가 자동차 조립 공장 건설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320억 체코 코루나(미화 1달러=24코루나)의 신규 투자와 1000명의 직접 고용을 하기로 한 현대자동차 투자 계획이 이루어지면 매년 500억 코루나의 수출 증가와 체코 GDP의 2.5% 증가를 기대하고 있다. 이 현대자동차 프로젝트는 수년 전 도요타/푸조 합작사가 체코 서부 보헤미아 지방에 세운 자동차 공장 프로젝트와 비교 될 만큼 체코 경제 성장에 아주 중요한 투자가 된다. 이 도요타/푸조 공장이 건설 될 때에는 1500~2000명의 고용이 예상되었으나 실제로 보헤미아 중부 콜린에 건설된 이 공장은 현재 3300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다. 체코는 독일, 폴란드, 슬로바키아, 오스트리아 등으로 둘러 쌓인 중앙 유럽에 위치하고, 인구 천만 명, 남한 땅보다 약간 작은 나라로 자동차 산업이 발달하여 “새 디트로이트”로 불리워지고 있다.

오늘 아침 체코 주최회사측이 제공한 차량 편으로 할리데이인 호텔을 떠나 프라하 국제 공항으로 가기 위해 고속도로로 들어선 나는 브르노-프라하 고속도로를 달리는 동안 몇 대의 현대승용차가 힘차게 질주해 가는 모습을 보았다. 자동차! 자동차는 한 나라의 기계 기술 수준과 그 나라의 국력을 홍보하는 “달리는 광고판”이다. 1970년대 후반 그리스 출장때 현대 자동차의 포니가 그리스 수도 아테네 시가를 시원스럽게 질주하는 것을 보았을 때 얼마나 감동했는지... 이제 한국의 자동차가 유럽 자동차 산업의 새로운 중심지 한복판을 달리고 있고 또 이곳에 자동차 공장을 건설하여 당당히 유럽 자동차 시장에 뛰어 든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뛰는 흥분을 금할 수 없다. 이곳에 매일 쏟아져 들어오는 한국 관광객들도 한국의 자동차가 이 고속도로를 달려가는 모습을 보면 나와 같이 느낄 것이다.

그런데 지금 한국에서는 현대자동차를 이끌고 가는 총수가 수의를 입고 감옥에서 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비자금 조성, 횡령, 뇌물제공 등의 단어들이 그의 사진과 함께 신문 지면에 커다란 제목으로 채우고 있다. 가슴이 답답하다. 막 스쳐 지나간 고속도로 변의 현대자동차 옥외 광고판이 왠지 측은해 보인다.

나는 프라하 공항에서 암스테르담으로 가기 위해 공항 대합실 안에서 다음 회의가 열릴 로테르담의 자료를 살펴본다.